이재용-임세령 부부 결혼사진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은 1998년, 9살 연하의 임세령(41) 대상그룹 전무와 결혼했다.

임세령은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로 성격이 소탈하고 순해 많은 재벌가들이 며느릿감으로 눈독을 들였다.

마침 이재용의 모친 홍라희 씨와 임세령의 모친 박현주 씨가 잘 아는 사이라 둘을 소개시켜 줬고 1997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시작한다. 이재용의 집과 임세령의 집은 100m 거리다.

당시 이재용은 29세로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학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었고 임세령은 20세로 연세대학교 본교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참고로 임세령이 연세대 원주캠퍼스 출신이란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둘은 교제 1년 만에 약혼식을 올렸고 5개월 뒤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임세령은 겨우 21세로 학교도 졸업하지 않아 서둘러 결혼한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전라도 출신이고, 삼성그룹이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올인'했기 때문에 전라도 기업인 대상그룹과 사돈을 맺어 김대중 정부에 줄을 대기 위한 것이란 추측이 무성했다.

2001년 당시 이재용-임세령 부부

이재용-임세령의 결혼은 경상도 대표 기업 삼성그룹의 장남과 전라도 대표 기업 대상그룹의 장녀의 결혼인 데다 70년대 대상그룹의 '미원'이 삼성그룹의 '미풍'과 조미료 전쟁에서 승리한 바 있어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임세령은 결혼과 동시에 연세대를 자퇴하고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 뉴욕대학교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이듬해에는 암 치료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시아버지 이건희 회장을 22세의 어린 나이에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임세령은 23세이던 2000년 첫 아들을 출산하고 2004년에는 딸을 낳았다. 하지만 모두 뉴욕에서 출산해 아이들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아 원정 출산 논란이 일었다.

이건희 회장은 손주들을 무척 아껴 함께 손을 잡고 에버랜드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임세령은 귀국 후 외부 활동을 삼가고 내조와 육아에 전념했으나 이재용과 갈등으로 수년 간 마음고생을 했고 친정 어머니 역시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이재용 부회장

결국 2008년 봄부터 수차례 프랑스 파리에 장기 체류하며 별거에 들어가 결혼 11년 만인 2009년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전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이혼사유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임세령 어머니는 '오죽하면 아이 낳고 10년 넘게 살던 주부가 이혼을 결심했겠나'라며 에둘러 표현했다. 이건희 회장은 소송 바로 다음날 입원했다.

임세령은 위자료 10억 원과 양육권을 요구했고 5000억 원 규모의 재산분할 소송도 함께 냈다.

당시 이재용은 삼성그룹 계열사의 1조 원 규모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재산의 절반을 요구한 것이다.

재산 분할을 청구할 경우 분할액에 위자료를 포함시키는 게 관례지만 임세령은 위자료를 따로 청구했다.

재벌가가 위자료를 요구하는 것 역시 극히 이례적이다. 실제로 임세령은 수천억 원 대의 주식을 보유해 10억 원의 위자료는 없어도 그만이었다.

위자료란 '배우자의 외도, 폭력 등에 대한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통상 위자료가 1억 원 이상 나오기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10억 원의 위자료는 이재용에게 결정적인 귀책사유가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임세령 전무

반면 임세령 어머니는 '이재용에게 이혼 원인이 있느냐'는 질문에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사생활 공개를 무릅쓰고 재벌가가 이혼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드문 데다 삼성그룹의 정보라인조차 예상치 못했을 만큼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삼성그룹과 대상그룹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결국 임세령은 일주일 만에 소송을 취하하고 합의 이혼했으며 친권은 이재용이 갖기로 했다.

속전속결로 합의 이혼한 데에는 삼성그룹이 적극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란 추측이 유력하다. 소송을 통해 이재용의 사생활이 밝혀지거나 재산 내역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이혼 후 이재용과 임세령이 자녀들의 학교 행사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된 걸 보면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